향토사 연구위원 3차 비지정문화재 현장조사(15. 10. 26)
페이지 정보
작성자 평창문화원 작성일15-12-04 16:53 조회2,480회 댓글0건본문
봉평지역 비지정문화재 조사
1. 기간: 2015. 10. 26일
2. 대상: 팔석정, 봉선서재.
3. 조사방법
가. 문헌조사: 문화원에서 1차 조사
나. 현장조사: 향토사 연구위원 참여
4. 조사내용
가. 팔석정
○ 양사언(1517~1584. 5. 12)과 관련한 명소
주변 바위와 노송이 어울러져 경치가 매우 뛰어났기에 양사언 부사일행이 시작 등으로 풍류를 즐겼던 것으로 추정되며 8개의 바위가 있어 이를 정자로 삼아 팔석정이라 하고 바위마다 이름 짓고 음각으로 세긴 것으로 추정된다. 기록상으로는 8개소가 전해지고 있으나 현재로는 보존과 관리상태가 미흡한 상태이다. 고증을 거쳐서 문화재로 지정할 것이 요구된다.
○ 기록상의 팔석정(봉평면지 p124)
①봉래(蓬萊) ②방장(方丈) ③영주(瀛州) ④석대투래(石臺投萊) |
⑤석지청연(石池淸蓮) ⑥석실한수(石室閑睡) ⑦석요도약(石搖跳躍) ⑧석평위기(石坪圍棋) |
○ 양사언 연보
- 1517 출생 - 1540 진사시에 급제. 부모친 상을 당하여 6년간 시묘 - 1546. 정시문과에 급제 - 1555. 함흥부사 재임시 칭병사직 - 1560. 평창군수로 임명 - 1561. 상소 올려 군민에게 조용조 면제 - 1564. 성균관 사예로 영전. 청원군수로 자임. 고성 감호에 거주, 비래정 지음 - 1565. 칭병으로 사직 - 1566. 회양부사로 도임. 만폭동에 <봉래풍악원화동천> 8자 새김 - 1568칭병으로 회양부사 사직 - 1571. 강릉부사로 도임 - 1577. 안변부사로 승진임용 - 1581. 지릉 화재사건으로 해서(장연)에 유배됨 - 1584. 5. 12 별세 - 1633. 아들 만고에 의하여 봉래시집 판간됨 ※ 출처: 홍순석. 양사언의 생애와 시, 서울: 경인문화사, 2000 |
나. 봉산서재(蓬山書齋)
○ 이이((1536. 12. 26~ 1584. 1. 16)와 관련한 명소
- 평창군 봉평면 평촌리 산 16번지에 있는 사우로 율곡 이이와 화서 이항로를 제향하는 사당이다, 율곡의 부친인 이원수 공이 수운판 관으로 이곳 봉평 판관대에 거주하는 동안 신사임당께서 율곡선생 을 잉태하였다는 사실을 기리고 후세에 전하기 위하여 창건되었다 고 전해온다.
- 현종2년(1661)에 판관대를 중심으로 사방5리를 봉산서재의 위토 로 하사하여 율곡선생의 위업을 기리고 봉토하도록 하였으나 계속 유지되지 못하였다
- 1895년 유생 홍재형이 고종께 상소를 올려 서재건립을 허락 받아 1906년 유생들의 성금으로 창건되었다.
- 현판인 강수재(講修齋)는 의암 유인석 선생의 글씨로 알려졌다.
- 현재 건물 안에는 율곡 이이와 이항로 선생 영정이 있다.
□ 이이 연보 - 1536 오죽헌 탄생 - 1541. 서울로 올라감 - 1548. 진사 초시 장원 - 1551. 모친 별세 - 1554 시묘마치고 금강산 입산 - 1555. 자경문집필 - 1556 한성시 장원급제 - 1557. 결혼 - 1558. 별시 장원급제 - 1561. 부친(이원수)별세 - 1564. 명경과 급제. 호조좌랑 입각 - 1568. 외할머니 병환으로 관직사퇴 강릉 내려옴 - 1569 할머니 별세 - 1570 신병으로 사퇴 - 1572, 사간원, 홍문관 응교 등 사퇴 - 1574. 황해도 관찰사 - 1575. 성학집요 지음 - 1575 격몽요결 지음 - 1578 고산구곡가 지음. 대사간에 임명, 만언소 를 지어올림 - 1581. 호조판서에 오름 홍문과 예문관 대제학. 경연일기 지음 - 1582. 이조판서, 병조판서에 임명됨 - 1583. 시무육조를 지어올림. 이조판서. 10만양병 주장 - 1584. 별세 - 1624. 문성이란 시호함
※ 출처: 이민수 역. 격몽요결. 서울: 을류문화사. 1997.
|
5. 조사결과 의견
가. 팔석정에 대하여는
1) 당시 주변경관에 대해서는 상세하게 묘사하여 전해진 곳은 없으나 나무그늘도 있어 풍류를 즐기기에 좋은 곳으로 묘사되고 있다.
바위 8곳에 글자를 써놓았다고 전해진다.
2) 현재로는 글자의 보존 상태는 양호하지 아니하고 주면의 경관도 그리 빼어나다고 할 수 없는 상태다.
3) 먼저, 글자들이 양사언서체가 맞는 것인지 전문가의 고증을 받은 후에 이를 근거하여 주변의 경치를 최대한 고증하여 복원, 국민 관광지 규모로 조성하는 것이 바람직하다.
나. 봉산서재에 대하여는
댓글목록
등록된 댓글이 없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