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평창 아리랑과 정선 아리랑의 비교에 의한 평창아리랑의 원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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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성자 후세백작 작성일16-02-10 12:48 조회4,999회 댓글1건

본문

<< 평창아라리가 메나리조 영서지방 아라리의 원류이다>>

                                                                        후세백작 12.05.24. 13:23 
<우선 이 글을 쓰기에 아라리란 사전적 의미는 찾을 수 없으나 평창, 정선등 영서의 산간마을에서는 아리랑을 아라리라고도 부른다>

청옥산 아리랑 제는 작년부터인가 시작한 것 같은데 이는 평창 아라리의 상징성이고, 아직 관객은 별로이지만 아리랑의 산상 축제의 재미있는 한마당인 것에 감사드립니다.

후세는 다음 언젠가 시간 나는데로 우리 민족의 정서의 기조의 근저인 恨의 표출인 아리랑의 해석이란 글과 평창 아라리와 정선 아라리는 동일공간과 동일 시간대의 동일 선상에서 정선아라리는 1900년 초 변화를 가진 개산조 아리랑이 되었다.
강원 영서 산간지역인 평창, 정선 아라리는 그 기능 면에서 산의 아라리인데 정선지방에선 구한말 뗏목경기에 외부인들과 교류가 잦아져 산의 기능을 저버리고, 외부 아리랑에 동화되어 간 것이다.
그러면서도 산의 아라리로 불리워지는 것은 짝퉁이란 논지가 나의 이해인 것이다

흔히들 골이 빈 아류의 사람들이 정선 아리랑을 아리랑의 원조라 말 하는데 원조라면 그럼 아리랑이 제일 처음 정선에서 불리워졌단 말입니까??
정선 교육청의 학습 지도자료엔 그렇게 자나라는 세대들에게 가르치고 있는데 그의 저자 홍 교장선생은 바로 그런 아류의 사람이다.
학문엔 자유가 있지만, 자라나는 세대들에게 김일성식 엉터리 세뇌교육을 시키는 자이기 때문이다.

정선아라리도 평창아라리와 같이 하나의 장으로 원래는 후렴이 없었으나,  이후 뗏목경기에 시골처녀 도회지 동경으로 몸빼를 벗어 던지고 스커트 차림으로 변화한 것이 정선 아라리인 것이다.
스커트 차림의 패션화로 도시 동화적인 정선 아라리도 이 땅 영서의 산간의 아라리의 기능을 다하고자 스커트 차림으로 김도 메고하는 기능성을 다 하기엔 언 밸런스인 것이다.

이땅 산의 마을의 기능을 다하는 평창, 정선의 영서의 아라리는 원래 후렴이 없었다.
동일 지역에서  동일 역사성 속에 한쪽이 그대로이고 또 한 쪽은 선진 문물에 동화되어 원모습을 버린(후렴이 없는) 아라리가 쇠퇴하였다면 어느 쪽이 진짜일까??
산간지역의 기능을 다 하며 후렴도 없이 불리워지는 평창 아라리가 원래의 모습인 점이다.

 정선 아라리가 개화하고 진화하였다면 그것은 이 지역 영서의 공간에서 본다면 그것은 엉터리 역설이란 점이다.
왜냐면, 이 영서 산간마을의 산의 아라리로 기능을 버렸기 때문이다.

평창 아라리와 정선 아라리의 가락의 템포를 비교하면 평창 아라리가 정선 아라리에 비해 빠른 편이다.
상대적으로 정선 아라리는 후렴을 붙여 후렴을 부르자면 긴 호흡이 필요키 때문에 상대적으로 가락의 템포가 늦어지는 것이다,

여기서 평창아라리가 좀 빠른 템포라면 이는 에부터 내려오는 산의 아라리의 기능 면의 한 부분에서, 즉 일을 하는 템포의 기능에서 자연 부합되는 것이라면 정선 아라리의 느린 템포는 일의 기능 면에서,, 좀 구체적이라면 밭의 김을 멜때도 그 템포가 늦어져 기능을 맞출 수 없기 때문이다.
이렇게 이해하여 볼 때 정선 아라리는 산의 아라리로 이땅, 산의 기능성을 져버린 것이다.
그러나 모든 아리랑중 유일하게 후렴이 없는 평창아라리는 아직도 영서의 산의 기능을 충실히 이행하고 있는 것이다.

후렴이 없는 없다는 문제는 연구의 대상이지만 그 이유는 간단하리라 판단한다.
후렴은 서양식으로 보면 후렴(refrain)인가 아니면, 덧붙임(addition) 일까??
아라리는 메나리조로 산간지방의 혼자만의 가락이기 때문에 (산의 소리)  자연 산에서 일을하며 혼자서 반복적으로 부르기에 후렴의 똑같은 가사를 반복한다면 그도 심심한 일이라.. 가사에 치중해 불러야 흥이 더 있기 때문이다.
이 후렴이 원래 없는가?? 아니면  꼬리가 잘려 졌는가 하는 문제는 다음으로 미루며, 평창아라리와 정선 아라리의 형태상 구분과 이상으로 평창아라리가 완전한 정형의 산간 메나리조 아라리의 원류인 점을 밝힌다.

그러기에 이번 2018 평창 동계 올림픽에서 평창 아라리가 주제곡으로 선정되기를 희망하는 것이다.
정선 아라리는 70년대까지도 후렴 없이 서로 돌려 부르다가 새 가창자가 가사를 선 듯 정하지 하지 못했으면 시간 벌이를 주는 의미로 후렴을 부르곤 했다는 ( 김연갑 저, 아리랑 책에서 인용) 등 전선 아라리는 지금도 오랜 관습의 습관이 개작되어 가지만, 평창 아라리는 옛날 원음 그대로 전래되어 오고 있다.

그러면 평창과 정선 아라리 중 어느 쪽이 오리지널이라 할 수 있는가??
또한 평창 아라리는 꼬리의 후렴이 잘려지게 되는 연유를 유추 해석하여 이해하여 보는 글도 쓸 것이다.
김진백 님의 ( 평창 아리랑의 소고) 란 글에서 과거 정선아리랑도 꼬리가 잘려진 상태라고 이미 발표되었다.
그럼 옛날엔 정선 아리랑도 평창 아리랑과 동일 지역에 역사성을 지니고 있었던 것이다.

정선 아라리는 잘 숙련되고 가창력 있는 사람이 불러야 제맛이지만, 평창 아라리는 모든 사람 들이, 나 같은 음치가 불러도 흥얼거릴 수 있는 가락이다.
어찌 보면 평창 아라리의 감상은 촌스럽고 흉흘하기 짝이 없는 기분인 듯 하지만 잘 이해하여 보면 우리 생활의 전반을 표출하는 음의 영역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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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후세백작  12.05.25. 13:25 

평창 아라리는 하나의 음악적 장으로의 가락이기 이전에 우리의 삶 자체인 것이다.
가사는 물론 가락도 우리의 삶이 녹아있는 그 전부인 것이란 이야기이다.
몇 년 전인가 미탄에 근무하던 친구 운기가 평창아리라의 채집 CD를 소포로 붙여 감사히 받았다.
고마음에 소포를 풀러보니 CD도 두 장 있는데 이를 들어보니 촌스럽기 짝이 없었다.
아마 랩 세대라면 그 순간 휴지통으로 버렷슬 듯한 평창 아라리의 CD 두장과 책 한 권은 이후 지금까지도 잘 보고,듣고 있다.

촌스런 할아범, 할멈의 노랫가락, 그러나 그 노래를 잘 들어보면 예전 나의 할머님 음성같기도 하고, 동리 할아버님의 목소리 같기도 한, 즉 우리의 일상의 목소리요. 우리의 얼굴인 것이였다.
이는 하나의 아리랑으로서의 아라리이기 전에 바로 이 땅 영서의 고장의 생활 자체의 문화인 것이었다.
이 생각이 평창아라리를 사랑하는 평창인들의 생각이리라.

지금까지 기끔 평창아라리 일천여 수의 가사를 곰곰이 들여다 보고, 이 아라리 가락은 MP3로 전환하여 일을 할 때나 운동시나 싸이클 타고도, 아니면 어떠한 장에서도 무수히 들어 보는 느낌의 차이를 이해하는 게 지금까지의 나의 평창 아라리 이해인 것이다.

이 평창 아라리를 관련도 없는 다른 학자들이 미화나 예찬해 주지는 못하기에 나로서는, 평창인 스스로 평창아라리의 예찬의 글을 쓸 것이다.
그를 위해서 지금 나는 황헌의 매천야록중 아리랑 부분과 김열규, 헐버트의 아리랑 원문등, 가장 논리적인 현 숭실대 김용호 박사의 아리랑까지도 닥치는데로 수없이 반복해보며 아리랑의 원형은 무엇인가를 생각하고 있다.

끝으로 청옥산 작은 산상 아리랑 제는 참으로 의미있는 일인 것이다.
그것이 우리의 생활과 동떨어진 것이 아니라 위리의 삶을 구가하고 표현해 주는 노력인 것이다.

우선 간단히 아리랑의 전반적인 해석을 해 보면,,,
아리랑이란 고대 선사시대의 우리의 선조 님들도 불렀슬 것이다. 그것이 4-5 천년 구전으로 전해지며 우리의 온 일상에서 불리워지는 것이란 느낌이 나의 생각이다.

또한 아리랑의 전반적인 모습이나 이 평창 아라리까지도 모든 아리랑은 자유 분망하면서도 제 스스로의 규격을 지니고 있다.
아리랑은 모든 역사속에서 드러내 보이지만 그 스스로의 철칙의 제한은 우선 서정성이란 점이다.
아리랑은 서사적이거나 타인의 관점이 아닌 자기의 관점에서의 가사이다.

정선아라리의 시원이란" 눈이 올라나 비가 올라나"의 가사가 임금님의 평온과 무사를 그리는 가사라고 볼수있습니까??
울 나라의 양반들이 임금에 대한 애정의 표현이라 볼 수 있습니까??
이 글의 뜻의 해석은 다음으로 하겠습니다.

이하 이러한 아리랑의 제 성격과 구격의 이야기는 다음으로 하겠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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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1.05.19 09:17
그리고 남천님!!
편리한 도시를 버리고 청옥산 아래로 이사하신 용기가 쉽지 않겠지만...
이왕에 시작(詩作)이라면 강원도 인심이라는 평창인들의 삶의 순박의 美를 그려봄직도....

그럼 내 고향  평창의 정서는 무엇일까??
평창은 아직도 가장 오랫동안 아라리가 변절없이 남아 있는 고장일 것이다.
인터넷에 올려져 있는 아리랑의 블로그들의 설명 등은 전부들 아리랑의 부분적 설명에 지나지 않는데, 어떤 사람들은 정선 아라리가 아리랑의 원조란 무지함과 오만함의 오류를 범하기도.

과연 현존 우리의 언어가 2,-3천 년전으로 올라갈 수 있는 단어는 어떤 단어들일까??
쉽게 이해해 보면 사직씨, 신농씨라는 단어는 중국 춘추시대 제후들의 이름으로 그후 2,000년이 지난 지금,  모 심기 등의 노동요로 우리에겐 농업의 神으로 일컬어 지고 있다.
이렇듯 우리가 지금 사용하는 언어들중엔 대부분 고어에서 발전하여 왔다는 생각이 맞지 않을까??  그러면, 그중에 아리랑이란 단어는 언제부터 사용되었슬까??

고대인들이 흥에 겨워 부르던 노랫가락의 소리가 아리랑이라는 단어는 아니였슬까??
아리아 인과 스메르 인이 합하여 왕검단군이 세습체제의 족장으로 하는 농경사회를 이룸에 그 기쁨을 나타낸 노랫가락이 아리랑, 쓰리랑일까??  아니면 그보다 더 엣날의 아프리카 언어에서 아리랑의 해석이 옳을 것일까??

만약 과거에 먼 옛날에 이런 일이 있었다면 그 아리랑은 그 시대 삶의 표현일 것이다. 이렇게 면면히 이어져 내려온 가락이 아리랑인 것이다. 그래서 아리랑은 민초의 삶의 애환 바로 그 자체인 것이다.

1930년대에 가사를 정하여 부르는 육자베기 진도 아리랑이나 정자소리의 밀양아리랑은 그를 부르는 것에 삶의 애환을 그렸다면, 메나리조의 평창아리랑은 오음계중 떨어지는 화음의 두번 째 음이 아래로 떨어지며, 탄식조에 의한 삶의 한탄의 소리와 천여 수 이상의 아리랑 가사에서 그 의미를 느낄 수 있슬 것이다.

평창 아라리의 천 여수의 가사를 보노라면 어려운 한문의 고사성어는 이조 초기의 육진 위의 잃어버린 땅을 북망산천 이라 하지 않던가?? 이 북망산천외엔 만리장성에 차출된 조공들의 애환을 그린 부인들의 간밤에 만리장성을 쌓았다는 생활에 접하는 고사성어 이외엔 아주 단순한 언어로만 구사되 있슴을 알 수 있다.

이 북망산천은 역사적 유추가 아닌 저승이란 뜻으로, 만리장성은 간밤에 노역간 남편을 그리며 뜬눈으로 세우는 열정의 규수의 애정보다는 욕정, 이들의  아리랑을 선비가 부르는게 아니라 우리의 민초들이 그때마다 삶의 애환을 그린 가사를 불렀다는 것을 나타내고
있는 것이다. 역으로 양반이 이국만리 노역간 남편을 그리는 문학을 추종할 수가..

그러기에 아라리의 의미는 恨이고, 이 恨의 기조는 아리랑(아라리)로 우리 민족 정서를 대변하는 것이다. 평창아리랑은 이런 옛 조상의 노랫가락이 오늘날까지 불리어 지는 가장 옛 원음으로 남아 있다.

정선 아라리도 평창 아라리 처럼 꼬리의 후렴이 퇴락되었었는데 근자에 다시 아리~랑,,, 아리~랑하는 후렴의 꼬리가 붙은 것이고, 정선 아라리는 소리를 내는 이가 목청을 가다듬고 불러야 제맛이 지만 평창 아라리는 지금 말로 하면 좀 촌스러운 듯 하지만 누구나 쉽게 부를 수 있는 가락이다.

이처럼 평창아라리의 가사는 조금씩 그 시대를 반영해 더불어 나지만 그 가락은 아직 그 옛날의 원음으로 남아 있는것 아닐까 한다. (여기서 원조라고 하면 오류이고 원음이 보존된다고 해야 맞는것인데 사고력도 없이 어떤 사람들은 정선 아리랑이 원조란 단어를 함부러 막 쓰는 것이다.)

그러면 평창아리랑엔 후렴이 없고 정선 아리랑엔 후렴이 다시 붙고 한 차이는 무엇일까??
아리랑을 들의 소리와 산의 소리로 구분하는데,  이 두 아리랑은 모두 산의 소리인 것이다.

들의 소리에 걸맞는 가락은 밀양아리랑의 노동요 같은 인상을 생각해 볼 수 있다면 산의 소리는 나물 뜯으러 다니며 홀로 부를때 소리일 것이다.
들의 소리는 상대방이 들어 준다면 산의 소리는 들어 주는이 없는 혼자의 무료함을 달래는 노래일 수 있다. 이때 후렴은 같은 가락을 수 없이 부르기에 자연 쇠락해져 짤려지고 없어진 것일까?

또한 정선사람들은 스스로가 정선아리랑이 우리나라 아리랑의 원조라는 엉터리 김일성식 발상의 소리를 하는데, 정선 아라리가 원조가 될 수 없는것은 1,800년 말 경복궁 중수때 산판 경기속에 팔도 사나이들이 몰려와 아리랑을 부르기에 원음 고수가 불가하였고 그래서 정선 아라리는 자연 유행을 틈타 일반 아리랑에 동화되어 가는 것이 아닐까 한다.

또한 우선 간략히 하면 당나라에서 돌아올 수 없이 자결한 "이초"의 문하생 "죽림 7현"이 목숨이 위태한 경각에서도 그들은 전오륜의 고향 정선으로 숨었슬까?? 그리고 태연스러운 노래가 나올 수 있던 환경이었슬까?
만약 그 7현중 후세백작인 내가 끼여 있다면, 여럿 죽일려구 그리로 가느냐고 나는 정선 땅을 밟지 않았슬 것이다.

물론 그들이 해금되고 정선 두문동 전오륜의 고향으로 가기전에 첩첩산중으로 둘러쌓인 한치뒷산 청옥산을 지나야 정선땅을 밟을 수 있기에 그들은 이 험한 산속에 얼마간 숨어 지냈었는지도 모를 일이다.

이때 부르던 노래가 "" 비가올라나 눈이 올라나"" 고려 임금을 걱정하는 가락 아닐런가 한다. .
그러나 이 선비들이 이러한 가사의 노래를 불렀다 하기엔 많은 모순의 문제를 내포 하고 있다.
그러한 문제의 글을 별도로 " 만수산 아라리"로 다시 짚어 보이겠습니다.

남천 님 !!
윗글 중 평창아라리는 아직도 그 옛날의 신선한 원음을 간직한 것으로 이해되며, 이로서 민초들의 삶의 한탄을 그려 볼 수 있다면 탄식 속에서도 인생을 세월에 맞기는 민초들의 恨을 詩作으로 표출하심도 진정함이 당위가 아닐까 합니다.

도회지의 잿빛 시간속에 일상보다는 이러한 민초들의 삶의 애환속에 오브제 속에서 쉬이 인생을 詩作으로 역어 볼 수 있지 않을까 생각합니다.
아라리 가락이 물씬 풍기는 청옥산 아래에서 부디 좋은 시상 속에서 좋은 詩選을 부탁드립니다.
감사 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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댓글목록

후세백작님의 댓글

후세백작 작성일

저의수 많은 글들중 이것만 올려 드립니다.
우리는 아라리를 하나의 노래로만 생각한다면 그것은 오류이고,평창의 옛 선인들의 애환등
삶의 일상에서 자연히 나오는 정체성의 표현이 아라리인 것입니다.
그래서 메나리조(메나토리권)의 산의 아라리인 것입니다.

이러한 구분은 지난세기에 미국의 석학 민속음학학자인 앨런 로맥스의 구분에 기인한 단어이지
 평창아라리 가사집 전문에 감수자들의 그에대한 설명도 미약합니다.

이로서 평창아라리의 이론은 아직 정립이 않된것으로 앞으로 저는 아리랑의 언원적 이해와
그에 속하는 평창아라리의 이론적 체계를 조금이나마 보탬시키려는 의미의 글 입니다.
또한 우리는 언 교수 논문이 표절이면 입건까지 하는데 정선 알리의 짜깁기 논리는 방관하며
이로써  평창아라리는 한 단계 아래로 떨어지고 아류가 되는듯한 인상에  저로서는 평창인으로
스스로의 이론을 확립하고자 합니다.
 그것이 태백산맥 영서지역의 영, 평, 정 아라리에서 평창아라리는 엣 원음 그대로를 보존하며 그
 기능성도 준수하면서 오늘도 대상리라든가 어디에선가 한 줄의 새로운 가사가 만들어지며 불리워질
것이란 점입니다.

또하나 저의 테마로는 얼정사 8각 9층 석탑의 제 문제입니다.
저도 고교시절 월정사 8각9층 석탑은 이단이고 북방형이라 배웠지요.
그 말의 진원지는 70년대초 본 탑을 해체, 수리 복원당시 감독관 정영호 선생과 기록자 문화재 위원 홍사준의
오류적 글에 기인한 점이라 생각하며, 저로서는 본 탑이 통일신라 4각3층의 정형탑을 넘어서는
울 나라 불교의 천녀간 지배해온 보조국사 지눌의 선 사상과 그 전의 굴산사지의 범일국사로 부터 이어지는
선종의 월정사의 찬란한 문화양식이라 점의 다수의 글도 있으며 역사박사들의 오류도 분명하게 지적하며
우리 평창인 스스로 8각9층 석탑의 불교사적, 문화사적, 역사학적으로 현존 우리나라 탑파 1,200여개중
가장 찬란함을 이야기 합니다.

그러나 평창의 여러 싸이트에도 이러한 평창의 정서를 기록할 곳이 마땅하지 않습니다.
차라리 언제가 한편의 책으로 후일 나와 같은 생각을 하는 사람들에게 책으로나마 조우하는게 편할까요??

평창의 문화와 그 오류들이 이해등,,,
평창문화원의 생각은 어떠신가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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